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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LX대한지적공사 사보 땅과 사람들] "커피 대신 차를 든 순간 시작된 삶의 변화"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자 2014-11-10
조회수 3052
예약희망 일/시 1110
 


 

커피 대신 차(茶)를 든 순간 시작된 삶의 변화

정신 없이 달리다가 문득 멈춰 섰다. 그때 그때 주어진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돌진하는 경주마 같이 살던 그 시절, 어느순간 자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저만치 뒤에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을 자신을 만나기 위해 그는 과감히 달리기를 멈추기로 했다. 그리고 느리게 가도 전혀 문제될 것 없는 지금의 삶에서 비로소 그 자신을 만났다.

 

외국계 IT기업 경영컨설턴트와 티 소믈리에

국내 티소믈리에 1호, 한국티소믈리에연구원 원장, 그리고 외식경영 분야 박사과정의 학생. 이것이 현재 정승호 원장에게 붙어있는 타이틀이다. 외국계 IT기업에서 컨설팅 업무를하던 이의 10년 뒤 타이틀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동떨어진 느낌이다. 정승호 원장은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회계, 금융 분야에서 근무하다가 경영 컨설턴트로 일했다. 당시 가장 혁신적인 경영 패러다임으로 주목 받던 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와 CRM(Customer Relation Management) 프로그램을 기업이 효율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컨설팅해주는 것이 그의 업무였다. 그 분야에서 10여 년을 일하며 많지 않은 나이였지만 전문성을 인정받고 나름의 입지도 구축했다. 자연히 고액의 수입도 뒤따랐다.
“제가 프로그램 매니저로서 컨설팅했던 ERP, CRM은 기업에서 당시 대단히 주목을 받았던 분야였습니다. 기업에 ERP 시스템이 구축되면 생산, 영업, 구매, 재고관리, 회계 등 모든 부서가 상황 정보를 공유하게 되어 기업의 전 부문이 통합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니까요. 하지만 새로운 제품이 개발될 때마다 저는 매번 다시 강도 높은 교육을 새로 받아야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나는 없어지고 다시 ‘리셋’되는 거지요.”

 

매일 10잔 이상의 커피와 잠들 수 없었던 밤들

 

당시 그가 하던 일은 짧은 주기로 빠르게 변하고 업무 수명이 그리 길지 않다 보니 10년, 20년 후의 미래는 그려볼 수도 없었다. 매일매일을 숨가쁘게 달리고 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빈껍데기가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바쁜 생활에서 그는 커피에 의지했다. 매일 아침 눈뜨면 습관적으로 커피를 마셨고 식사 후, 고객들과 미팅하며 또 다시 여러 잔의 커피를 마셨다. 하루에 10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는 날이 반복되다 보니 몸은 피곤한데 눈은 말똥말똥,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어느 날, 그는 여느 때와 같이 미팅을 하기 위해 회사 1층 커피숍에 모였다. 그런데 미팅에 참석한 한 직원이 자신은 커피를 마시지 못하겠다며 차를 주문하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그동안 밤에 잠도 못 이루면서 습관적으로 무심코 커피를 마시던 자신을 발견했다. 회사 1층의 그 커피숍은 대한민국에 커피 바람을 일으킨 유명한 브랜드의 커피숍이었다. 하지만
당시 그 커피숍에서는 커피 이외의 다른 음료는 판매하고 있지 않았다. 당연히 그 직원은 물만 마셔야 했다. 그때부터 그는 경영컨설팅 전문가 출신답게 커피에 대해 진지한 연구를 시작했다. 우선 자신에게 맞는 커피의 양과 오후 3~4시 이후의 커피는 수면에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주변인들 중 마시지 않는 사람과 커피를 마시긴 하되 자신처럼 제한적으로 마셔야 하는 사람들의 비중을 알아보았다.
“커피를 아예 못 마시는 부류가 30%, 저처럼 오후에 못 마시는 부류가 30~40% 정도 되더라고요. 저녁에도 커피숍에서 미팅하게 될 경우가 많은데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이 60~70%의 사람들은 이때 커피 대신 다른 것을 마셔야겠지요? 그 대안이 바로 ‘차’라고 생각했습니다.”


알수록 매력을 더해가는 차의 세계

사업적으로 접근하기는 했지만 본질적으로 차는 커피와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요구하는 음료였다. 심장을 두근두근 뛰게 하고, 잠을 못 이루게 하며, 바쁜 업무 중 즐길 수 있는 빠르고 간편한 커피와 달리 차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다려야 하며 빨리 서두를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의 그의 삶과는 사뭇 다른 속성을 지닌 차의 세계, 알면 알수록 그를 빠져들게 하는 매력적인 세계였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김태주의 시 「풀꽃」처럼 차는 그렇게 조금씩 그의 마음을 열고 그를 변화시켰다. 차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일본 요코하마로 가 유럽에서 건너온 티테이스터들로부터 일주일간 집중적인 강의를 들었다. 이후 그곳에서 만난 수강생들과 함께 차 산지를 다니고 티 소믈리에 과정을 배우는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해 차의 특성과 역사, 문화를 배우고 이해할 수 있었다.
“차의 속성을 이해하려면 차의 산지, 역사, 문화까지 두루 알고 차의 특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차가 단순히 음다(飮茶)에서 끝나지 않고 마시는 사람의 정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차의 특성을 잘 알고 있는 티 소믈리에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지요. 사람들이 이 부분에 대해서 이해하게 된다면 차 시장은 지금의 몇 배로 성장할 것입니다.”

 

차 시장의 발전 이끌어나갈 티 소믈리에 양성

한국은 외국계 커피 브랜드를 제치고 토종 커피 브랜드들이 우세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 세계 시장에서도 희귀한 사례로 꼽힌다. 정승호 원장은 한국에서 커피가 산업화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커피 전문가 집단인 바리스타들이 양성되었다는 점을 꼽는다. 커피를 ‘제대로’ 알고 고객에게 ‘제대로’ 된 맛의 커피를 내놓으면서 국내 커피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했다는 이야기다. 요즘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스페셜티 티운동’도 바로 차를 ‘제대로’ 마시자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는 2011년 지금의 한국티소믈리에연구원을 설립했다. 10여 년간 차에 대해 연구하고 배우고 캐나다에서 4년 반, 국내 호텔리어를 상대로 가르쳤던 경험들을 정리하여 티 소믈리에 과정 강의를 개설했다.
“차 산지를 다니고, 외국에 가서 배운 10여년에 걸친 과정들을 통합하여 단기간에 배울 수 있도록 정리를 했어요. 한국티소믈리에연구원을 통해 티 소믈리에로 활동하시는 분들이 현재 200~300명 정도 계시지요. 차의 속성대로 차시장은 아주 천천히 확장되고 있어요. 커피산업의 발전을 견인했던 바리스타처럼 이 분들이 앞으로 차 시장의 저변 확대에 큰 역할을
하시게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제2의 차 르네상스가 일으킬 세상의 변화

 

식문화는 그 시대 상황과 흐름을 같이 한다. 계속 깨어 움직이게 하는 동적인 속성의 커피는 IMF를 겪으며 매일을 긴장하면서 쉼 없이 달려야 했던 당시 우리 사회 분위기와 잘 맞아 떨어졌다.
“무작정 달리던 그때와 달리 지금 사람들은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아요.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이죠. 정서적 여유와 사색을 만들어주는 차는 그러한 점에서 지금의 사회적 트렌드에 맞는 정적인 속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도 차로 치유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OECD 국가 중 1인당 술 소비량이 매번 상위권에 랭크되는 우리나라의 지나친 음주 문화도 차의 시대가 열리면 변화될 것이라 예상한다. 중국대륙에서 유럽으로 건너가 문화적 르네상스를 꽃피웠던 ‘차’가 다시 차의 종주국인 중국으로 넘어와 아시아와 함께 호주, 미국까지 서서히 바람을 일으키며 제2의 차 르네상스를 일으킬 것이라 내다보는 정승호 원장. 차를 통해 조금씩 천천히 변화되었던 자신의 삶처럼 차를 통해 세상도 그렇게 조금씩 변화될 것이라 그는 믿고 있다.


글 한경희 사진 이서연